“416, 잊지 않겠습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보내는 “세월호” 추모 기념 피크닉 이모저모
“세월호 2주기”를 맞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슬픔, 분노, 허탈, 무기력을 느껴왔고, 남은 유가족과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망설였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한 사람의 제안에서 촉발된 이 행사는 다양한 한인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졌고, 행사 당일까지 수차례 회의와 준비과정을 거치며, 톱니바퀴가 맞물리 듯 흘러왔다. 누가 누구의 머리가 되지도 않았고, 누가 누구의 꼬리가 되지도 않았다. 그저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자율적 주체들의 자발적 참여로 행사 준비는 순적하게 이뤄졌다. 어쩌면, 우리는 이 행사를 통해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더불어 우리 안의 민주주의를 덤으로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우리의 기획은 세월호를 추모하는 ‘피크닉’에 있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되, 어린 아이에서 프랑스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기억할 수 있는 행사를 고민하다가 이 곳에서 익숙한 ‘피크닉’이라는 방식을 찾았다. 공화국 광장 잔디밭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도 나누고, 추모곡을 함께 부르고,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문화 공연을 진행하고, 이 후 인권재판소로 이동해 304개의 노란 리본을 매다는 것으로 우리의 ‘기억 작업’을 진행하려 했다.
행사 당일
4월 16일 아침부터 짖궂게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를 통해 이미 예상은 했지만, 이 비가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공식적인 행사 시작은 오전 11시이지만, 행사장 설치를 위해 오전 10시부터 가랑비를 맞아가며 짐을 나르고, 천막과 부스를 설치했다. 갑자기 경찰차가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했지만, 경찰은 집회 시간을 간단히 확인한 뒤, ‘본 주르네’(좋은 하루 되세요)를 던지고 되돌아갔다. 집회 안전에 신경을 쓰며, 시위대를 보호하는 것이 경찰의 중요 업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물대포가 아니라.
행사 시간이 다가올 수록, 비는 그칠 줄 몰랐다. 날씨 때문에 인원이 적게 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우리는 삼삼오오 행사장 주변을 가득 채웠다. 스트라스부르 시내에서, 기차로 1시간 넘게 달려와야 하는 알자스 최남단에서, 심지어 4시간 거리인 독일 뮌헨에서, 유모차를 탄 아이, 유치원생, 여러 분야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들, 아기 띠를 두른 엄마, 단원고 2학년 친구 또래 자녀를 둔 부모님들, 한-불, 한-독 커플에 이르기까지, 거리, 연령, 인종을 넘어 ‘기억하기’ 위해 그 자리를 채웠다. 우리는 서로가 너무 고마웠다.
십시일반 모인 304켤레 신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노란 리본, “416, 잊지 않겠습니다(416,
N’oublions pas)”가 새겨진 노란 현수막, 노란 종이로 접은 배, 공화국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 잔디밭의 녹빛과 어우러진 노란 빛 물결은 내리는 비와 더불어 더욱 투명하게 빛났다. 희생된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남은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재차 다지며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내리는 비에 신발을 비닐로 포장하고, 연대와 응원을 표하는 짤막한 글귀를 새기고, ‘천 개의 바람’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아침이슬’을 불렀다. 곳곳에 노란 리본을 달고, 노란 종이배를 접으며, 미리 준비한 세월호 관련 유인물과 부착물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입간판을 세워 세월호를 함께 기억해 달라 호소했다. 행사장 한 켠에서는 재외 한인 투표소 스트라스부르 설치를 위한 서명 운동도 진행되었다. 한국의 정치 대리자를 선택할 직접적 투표권은 없지만, 민주주의의 대의에 동의하여 연대 서명을 해 준 프랑스인, 독일인도 있었다.
광장 앞 잔디밭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이 꽤나 신기하게 보였나보다. 지나는 시민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신발을 바라보거나 때때로 사진을 찍거나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물어왔다. 세월호 2주기를 기념하는 행사이며, 304명의 희생자를 기념하려 304켤레의 신발을 전시했다고 설명해 주고, 세월호 관련 유인물을 드렸다. 우리가 만난 이 곳 시민들은 깊이는 달랐지만 대부분 세월호를 알고 있었다. 지역 유력지 DNA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이 지역에 세월호를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아직도 한 마디가 귓가에 맴돈다. “아 ! 세월호. 저도 기억합니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노인의 말씀이 이토록 고마울 줄이야.
공화국 광장에서 행사를 마무리 한 뒤, 우리는 유럽 인권재판소로 이동했다. 무엇보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해상 사고가 아니라, 국가의 무능과 자본을 인간보다 우위에 둔 ‘인재’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304개의 리본을 매달아 인간 생명보다 더 상위 가치가 설 자리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행사 시작 7시간이 흘렀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물에 젖은 리본, 물에 젖은 신발. 갑자기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기억, 연대, 다음세대
행사를 마감하며, 남은 것은 참여해 준 서로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비 내리고 추운 날씨에도 서로를 격려하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나누고, 따뜻한 차와 준비된 도시락을 챙겨주는 모습에서 우리는 ‘고마움’을 느꼈다.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해외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자신감’도 얻었다. 우리가 뭉치면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이 기억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목도했다. 무엇보다, 현장에 함께 했던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무언의 교육이 되었을 것이다. 노란 종이배를 접고, 손에 잉크를 묻혀 지장을 찍고, 노란 리본을 함께 매달고, 신발을 정리하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따라 불렀던 이 아이들은 ‘노란색’과 더불어 세월호를 잊지 않을 것이다. “기억”은 그렇게 유전될 것이다.